"미니 다리미를 샀어."
갑자기 집 앞에 놓인 상자를 풀어헤치던 이치지쿠가 꺼낸 첫마디다. 미니 다리미? 야츠모의 눈이 이치지쿠가 간신히 들고 있는 둔한 인두 같은 기구를 바라봤다. 그게?
"···. 뭐, 그래. 그래서."
"그래서는 무슨 그래서야?"
"그냥 그거 말하려고 불러 세운 거라고?"
지금? 내가 이거 하는데?
야츠모가 위협적으로 양팔에 가득 든 짐을 들어보였다. 이치지쿠의 스크랩북, 스크랩북, 스크랩북, 스크랩북···. 그리고 가끔 옛 원고나 선물받은 책이나 기타 등등.
그리고 발치에 채이는 상자들. 이치지쿠가 자연스레 시선을 돌려 설명서를 읽기 시작했다.
"어디서 딴청이야, 야."
"이것 봐, 야츠모 군. 조금만 기다리면 바로 습식 다림질이 가능하다네. 사람들의 편리함에 대한 욕구는 정말 굉장하지 않아? 이젠 다리미까지 한손에 들 수 있는 걸 만들고 있잖아?"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감상이 그게 끝이라고?"
야츠모의 발이 헤쳐진 박스를 밟는다. 버석이는 소리다. 그야 뭐. 이치지쿠는 다시 한눈을 팔다가 마지못해 대답한다. "네 짐이 적은 게 내 잘못은 아니고."
창 밖으로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후 2시, 겨울치고는 따뜻한 햇빛이 베란다를 밝힌다. 그 때문에 더 잘 보이는 방 전경은 인테리어적으로 좋다고 보기는 어렵다. 왜 있는지 모를 큰 열대식물과 고풍스러운 테이블, PC, 창에 걸린 반짝이는 썬캐쳐, 거실의 침대, 이 모든 인테리어를 쓸모없게 만드는 바닥에 널린 골판지 상자들···.
소위 말하는 갓 이사한 집 풍경이다.
"왜 센터를 안 쓴 건데?"
"그럼 이걸 어떻게 맡겨?"
예를 들면 총이니, 좀 위험해 보이는 칼이나 사람 표본 혹은 무슨 생물의 표본인지도 모를 샘플들 하며···. 그중에는 아직도 움직이는 게 섞여 있었다. 상자를 열자마자 잡혀가기 딱 좋다. 그렇다고 이런 위험한 거 옮기는 걸 메인으로 하는 사람들을 쓰기에는 또 여기까지 도망쳐 온 이유가 걸린다.
그때 도쿄 타워 터트린다는 걸 막을 걸 그랬나. 야츠모는 내심 생각했지만 그만둔다. 재미있고 예쁘긴 예뻤으니까. 원래 하고 싶은 걸 참고 살아온 사람들이 아니다.
"그리고 너도 알겠지만, 나는 어차피 짐을 옮길 때 책 세 권 이상을 들면 유지가 안 되고-"
"알았어, 알았다고. 더 어지르지나 마!"
"그럼 뭐가 들었을지도 모르는데 상자를 그냥 둬? 그게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단세포 군?"
또 단세포 타령이지. 야츠모는 스크랩 북을 벽의 책장에 되는 대로 꽂으며 투덜거렸다. 그러나 이 일상적인 호칭이 새삼 돌아온 것에 나쁜 감상만 드는 것은 아니다. 아니, 맞나? 최근에 둘 다 바보라고 인정한 거 아니었어? 왜 나만 단세포지?
생각은 발치에 닿는 천에 의해서 멈춘다. 야츠모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가자 이치지쿠의 정수리가 보였다. 다리미를 조립하고 설명서를 읽는 사이 언제 가까이 온 건지. 발을 거의 깔고 앉아 다리에 기댄 이치지쿠가 다리 한쪽을 팔로 감아 끌어안은 채로 몸을 가볍게 흔들었다.
"야츠모 군, 구겨진 옷 같은 거 없어?"
"이거 정리하고 하자고."
"쩨쩨하긴."
다리를 움직여 이치지쿠를 찌르면 발치에서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자연스럽게 가까워진 거리를 인지하는 것은 늘 반 박자 늦다. 이치지쿠는 딱 반년만 전이었어도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고 새삼스레 생각하면서 다리미의 손잡이를 마저 조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