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신인 대상 문학상 코멘트 2
レトルト
·
2025-03-22 11:25
「당신은 행복을 알고 있습니까?」

첨부 파일 "뭐지, 이 난장판?" 아~, 어서 와. 이치지쿠는 대충 인사하며 만년필 끝으로 이마를 긁었다. 대충 쌓아둔 원고지 더미를 읽기 편하게 낱장으로 풀어 쌓아뒀는데, 기지개를 켜다가 툭 쳐서 바닥에 이리저리 흩어진 것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대참사다. 현관에서는 적당히 피해서 바닥을 밟던 야츠모는 거실로 들어서자 피하기 위해서는 순간이동 같은 초능력이 필요할 거라는 걸 깨닫고 그냥 밟기 시작했다. 이 방에서의 약 두 달은 인쇄된 데다가 교정이 적히지도 않은 원고는 이면지와 크게 다를 바는 없다는 걸 알게 해 줄 정도는 되었기 때문이다. 이치지쿠가 버릇처럼 밟으면 어떡하냐 푸념하는 소리는 흘려듣고. 진짜 밟으면 안 되는 거면 정말 시끄럽게 굴기 시작하는 데다가 사실 안 치운 게 잘못이다. "뭐 그건 그렇고." 이렇게. 밟지 마, 구겨지잖아, 밟지 말라니까, 피할 수 있잖아, 같은 말을 중얼거린 거 치고─애초에 전 혀 감정이 담기지도 않은 국어책 읽기였지만─화제를 금방 전환한 이치지쿠가 핸드폰을 열어 버튼을 몇 개 눌러보더니 야츠모를 보고 다시 물었다. "오늘은 뭐 시킬 거야?" 야츠모는 고개를 이쪽으로 돌리고 잠시 침묵했다. 이자식이 남 좋을 일을 순순히 해줄 리가 없는데. 아마 그런 생각을 하고 있겠지. 이치지쿠가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둘은 1월 1일부터 정말로 50만엔을 채울 기세로 외식이나 배달 같은 걸로 저녁을 해결하고 있었다. 애초에 이치지쿠는 스스로 뭘 만들어 먹을 생각을 거의 안했지만, 그건 그거고, 쭉 야츠모 몫까지 착실하게 시키는 데다가 메뉴 선정을 물어본다는 점이 특히 이상한 부분이었다. 매우 사소하고 당연한 일이지만 그게 이치지쿠가 대상이라면 '죽을 때 됐나' 싶은 행동이라. 생각하기 귀찮을 때 외에는 말해줘도 '근데 이거 먹고 싶어' 하던 녀석이 그대로 음식을 시키는 일이 며칠이나 반복되면 아무래도 이상하다. "사고 쳤냐?" "호의에 돌아오는 대답이 대체 왜 이러지?" 몰라서 묻나? 야츠모가 이치지쿠를 빤히 바라봤다. 이치지쿠는 흥 하고 고개를 돌렸다. 아무튼 서른이 할 짓은 아니었으므로 야츠모는 고개를 한 번 절레절레 젓고, 역시 이상하네 생각했다. 어느 날은 장난 삼아 호텔 뷔페 배달을 하자 그랬더니 그래, 하고 선뜻 사는 것 아닌가. "네 경제관념도 이상하긴 이상해." "갑자기 뭐야? 너한테는 듣고 싶지 않은걸, 대체 어디에 돈을 쓰는지 알수가 없어. 벌이는 괜찮은 편일 텐데 말이야. 가계부 같은 거라도 쓰는 연습을 하는 게 어떨까?" "난 분명 새해 첫 날에 원한 좀 덜 사면서 살라고 했던 것 같은데 말이야. 왜 입은 전혀 변하질 않을까." "저기, 그래서 밥 사주잖아." "그러니까 입을 좀 가만 두라고, 입을. 아니, 행동도." "어차피 내가 '괜찮아? 다친 데는 없고? 네가 무사해서 다행이야, 정말 기뻐'같은 말 해봤자 어디 아픈가 싶을 거 아냐? 뭐 꿍꿍이 속이 따로 있냐던가. 그러느니 평소대로 구는 게 낫지. 그래서 뭐 먹을 건데?" 하여간 한마디 질 생각을 안 하지. 이걸 쥐어박아 말아. 주먹을 쥘락말락하는 손을 내려다보는 야츠모를 보고 이치지쿠가 짐작한 속내가 이렇다. 그리고 그렇게 짐작해 놓고도 이치지쿠는 다시 입을 놀렸다. "애초에 나쁠 거 없잖아? 내가 거기 독을 타겠어, 약을 타겠어. 말하고 나니 좀 궁금하긴 하지만 그럴 이유도 없고, 하루아침에 사람이 바뀔 리도 없고, 그럼 사준다는 건 누리는 게 이득이지. 조금 기다리면 마시멜로를 하나 더 준다는데 굳이 당장 먹을 필요 없지? 간단한 계산이지?" 얄미운 소리만 골라서 말이다. '계산 어려워? 1더하기 1이 뭐야 야츠모군?' 같은 말이 흘러나올 때 결국 정수리에 주먹이 한 번 내리쳐진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악! 짧은 비명이 들려오고 이치지쿠는 정수리를 양손으로 감싼 채 침대에 엎어졌다. "잠깐, 요즘 강도가 점점 강해지는 것 같은데…." "오호라, 머리를 때려도 뇌세포가 닳는 건 아닌가 본데. 정확하게 판단했네." "저기, 네가 차라리 네 손으로 죽이면 죽였지, 같은 말을 했어도 이렇게 조금씩 머리에 충격이 쌓이면서 천천히 죽이는 건 좀 악취미라고 봐." 그리고 야츠모가 선글라스를 고쳐 쓰고 고민이라도 하듯 자기 다리를 내려다보고 있었으므로 이치지쿠는 그대로 뒹굴 굴러 침대 끝으로 가 방치했던 노트와 만년필을 쥐었다. 저 일 하고 있어요, 착실하거든요, 그런 어필이라도 하듯이. 실제로 해야 하는 일이기도 했고. 며칠 전 마루베가 보내준 신인 대상 작품 중에는 매우 감성적인 것도 두어권 섞여 있어 혼자일 때만 읽으려 부득불 애쓰다 보니 다 본 것은 겨우 그제였다. 그리고 감상이라고 할까 코멘트나 피드백을 다 쓴 것이 어제. 단지 내용이 새삼스럽게 매우 상냥한 어조로 쓰여 있어 이치지쿠는 새삼스레 수정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각 잡고 덧붙이고 없앨 기분도 또 들지 않아서 이렇게 침대에서 뒹굴뒹굴 굴러다니다가 적당히 몇 자 끼적이고 한참 들여다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근데 진짜 빨리 골라, 일본은 24시 여는 가게가 거의 없다고. 곧 문 닫는다니까?" "너 딱 5분 조용했던 거 알아?" "그걸 세고 있었어? 쪼잔하긴." 한 번 더 정의의 응징이 있고 난 뒤 이치지쿠는 겨우 입을 다물었다. 조용히 검토나 하고 있으려니 글자 위로 직 그어진 선 하나가 괜시리 더 우울했다. 거 참. 노트를 팔락팔락 넘겨보고 속독한 다음 이치지쿠는 속으로 혀를 찼다. 스스로 적은 상냥한 문장에 눈이 아파 안경을 벗고 눈을 가볍게 문지른다. 무엇보다, 딱히 의식해서 적은 게 아니기에 곤란했다. 사람이 상냥해지는 것은 가까운 사람, 혹은 전혀 모르는 사람, 두 가지 타입이 있다. 보통은 전자다.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그만큼 아끼고 보살피는 게 당연하지. 후자는 조금 특이하다. 어떻게 보면 사랑을 너무 받은 타입이라고 할까, 안정감이나 신뢰가 너무 커서 도리어 살펴보질 못한다고 할까. 관계에 확신이 있어 확신 없는 타인에게 미움받기 싫어 더 상냥해지는 부류들. 이치지쿠는 보다시피, 얼굴은 커녕 이름도 아무것도 모르는, 활자 너머의 사람에게는 상냥해질 수 있는 인간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안정적인 관계가 있느냐면 언어도단. 이치지쿠는 관계가 영원할 리 없다고 자신했다. 이혼률이 얼마나 높은 줄 알아? 친족 간에 재판이 벌어지는 일은 또 얼마나 많고. 그러므로 둘 중 어느 쪽에도 해당될 수 없다. 이치지쿠는 그냥. "그런데 어제 다 썼다고 하지 않았나, 그거?" "첨삭 하는 중이야." "네가 진짜 글 쓰고 있으니까 뭔가 이상한데. 하고 다니는 건 무슨 매드 사이언티스트나 닥터 같은데 말이야." "그런 너는 왜 총을 안 들고 다녀? 완전 딱인데." "총 가지고 다니면 불법이거든." "네 직업은 합법인가 물어보고 싶지만… …. 넘어가자고. 가지고는 있고?" "갑자기 이런 건 왜 묻는데?" 일찍이 이치지쿠는 어떤 선택을 했다. 아끼려고 한다면 아낄 수는 있다. 그도 물건을 소중히 다루는 법은 알았고, 아이의 섬세한 취급은 되려 익숙했다. 칭찬 정도는 사감 없이 해줄 수 있고, 은 어렵지만 누가 봐도 걱정하고 있구나 생각할 법하게 행동할 수는 있었다. 누굴 끌어안거나 뽀뽀를 해 주는 일 정도는 뭐, 할 수 있다. 그렇게 되기 위한 길을 선택했다. 꽤 삐뚤어진 방식이었지만 그건 어쩔 수 없었다. 평범하게 사랑하는 방식을 익히기에는 조금 부아가 치밀었으니까. "없으면 줄까 했지." "총을? … 너 원한을 덜 살 마음이 있기는 하?" "그야 뭐 죽고 싶진 않으니까 어느 정도는 아마도…." 원하면 정상적인 사람처럼 굴 수 있고 예전보다는 그런 감각도 짐작할 수 있게 된 이치지쿠지만, 그러므로 선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이런 방식으로 만든 애정이 그러니까, 멀쩡하기는 어려웠다. 이치지쿠는 이제 딱히 오래 고민하지 않아도 사람 열받는 태도를 취하는 데에는 도가 텄다. 버릇이 되어버린 성격이었다. 좋아하니까 잘해줘? 사랑하니까 아껴줘? 뭐야 그게. 무슨 감각이더라. 딱히 좋아하는 걸 망가뜨리고 싶다거나 상처주고 싶은 취향은 없지만, 한번쯤 할퀴고 싶어 손이 근질거리는 건 어쩔 수 없다. 꽃이 자라는 모습도 피는 모습도 지는 모습도 다 모아서 꽃이니까. 이치지쿠는 어떤 결론에 도달하기 전에 그렇게 사고를 한번 틀었다. 사실은 그대로 받아들이되, 진실을 아는 건 또 다른 이야기였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이치지쿠도 자신이 바라는 것과 반대되는 진실을 들춰볼 생각은 없었다. 예를 들면 어린 날 생각한 것처럼, 뭔가를 순수하게 사랑하거나 좋아하는 일은, 그럴 수는 없을 거라는 것과 같은 진실 말이다. 네 말이 맞아. 새해 첫 날의 대화를 떠올린다. 그래, 난 치사해. 그리고 그게 꽤 맘에 들어. 너희는 원하면 행복해질 수 있으니까 이 정돈 상관없잖아. 그 또한 나이에 맞지 않는 유치한 생떼임을 알면서 픽 웃어 무시한 몇 초 뒤 이 생각을 말 그대로 땅에 묻어버린 다음, 이치지쿠는 오늘 몇 번이고 입에 담았던 질문을 내뱉었다. 보편적 기준에 의거한, 바로 그 행복을 눈앞에서 놓쳤던 남자에게. "야츠모 군, 네 행복은 뭐야?" 얼굴을 알 수 없는 대신 가슴 속을 갈라 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런 생각을 오래 하기엔 이치지쿠는 스스로 때로 싫다고 느낄 정도는 평범한 사람이었으므로 망상 같은 생각을 치운 채 대답을 기다렸다. 아마 별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겠지 예상하면서. 그는 신기하게 생긴 총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걸 머스킷이라고 부른다는 걸 눈치채기에는 꽤 오래 전부터 그의 머리는 제대로 기능하지 않았고, 멀쩡할 때에도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기에 그냥 '낡은 총' 이라고 불리게 된다. 이 총은 그가 멋대로 빌려 쓰는 폐 건물의 구석에 정중하게 놓여 있었는데 나름의 이성을 긁어모아 이틀을 지켜보았음에도 아무도 찾으러 온 사람이 없었기에 그 총은 자연스레 그의 것이 되었다. 어쩐지 그 이후로 패는 더 이상하게 들어오는 것 같고, 빚을 진 사람들에게 들키는 일도 늘었으나 총, 총이라는 것 때문에 그는 원인을 하늘로 돌렸다. 이것만 있으면 언제든 한 번은 살 테니까. 그러니까 전부 저 위에 있는 놈이 나쁘다, 하고 도박신이고 재물신이고 닥치는 대로 험담을 하다가 어느 날은 오늘은 제발 좋은 패가 나오기를 바라면서 빌었다. 그래도 여유가 생겨서 그는 가끔 나쁜 패가 들어와도 히죽히죽 웃었다. 정 못 참겠다 싶으면 협박을 해서 싹 가지고 튀어도 좋지, 한 탕 하는 거야. 너흰 이런 게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하겠지! 아무렴 야쿠자라고 해도 총을 편하게 쓸 수 있는 나라는 아니었다. 그 정도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날은 묘한 우월감이 채워지기도 했다. 나는 굉장한 걸 가지고 있어, 마법처럼 뭐든 해결할 수 있는 걸 말이야. 그는 어느 순간부터 그 말이 진짜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는 방아쇠를 당기는 걸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고, 거리에서 어느 날 총성이 울렸으며, 어느 클럽의 도박장에서 벌어진 일로 뉴스는 연일 같은 이야기를 해 댔다. 그 즈음 뉴스가 흘러나오는 커다란 빌딩 전광판 아래의 서점에서는, 어떤 작가의 신작 소설 발매 기념으로 이벤트를 열고 있었다.